내가 머물 곳은 어디에
심은경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는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막상 보고 있으면 영화 자체가 뿜어내는 힘이 굉장했던 영화 [신문기자]. 국가와 언론의 추악한 이면을 들추는 이 작품은 보면서도 그냥 감독이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잘 만들었습니다. 공감도 되었고요. 한국의 상황과도 엇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겠죠.
[신문기자]를 만들었던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은 일본의 영화계를 이끌어 가는 젊은 감독 중 한 명인데, [야쿠자와 가족]은 바로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의 신작입니다. 일본에서는 올해 1월 29일 개봉했고 국내에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가 되었습니다. 어떤 영화일지 궁금했습니다. 상상도 했습니다. 1999년부터 2005년 그리고 2019년까지 약 20년에 걸쳐 야쿠자로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떤 이야기를 담아냈을지가 궁금했거든요.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이 '야쿠자'라는 소재를 선택한 것도 흥미로웠고요.
영화 [야쿠자와 가족]의 시작인 1999년, 마약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야쿠자 조직원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찬 탈색머리 야마모토 겐지(아야노 고)가 등장합니다. 세상에 대한 불만과 원망으로 가득찬 겐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시바자키구미의 두목인 시바자키 히로시. 겐지는 생전 처음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그를 따르게 되고, 그렇게 가족이 됩니다. 세월이 흘러 2005년, 야쿠자로서 겐지는 가족과도 같은 이 조직에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이 가족이 해체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그러던 어느 날, 라이벌 조직과의 세력 다툼에서 겐지는 부두목을 대신해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을 갑니다. 또 다시 세월이 흘러 2019년, 14년 만에 출소한 겐지는 다시 그의 가족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하죠.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족 시바자키구미와 두목의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가 지켜야 할 가족도 없고, 그를 보듬어 줄 가족도 없는 사회에 내동댕이쳐집니다.
영화 [야쿠자와 가족]은 크게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1999년과 2005년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야쿠자로서의 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그 두 파트가 야쿠자라는 이름이 통하는 시대였다면,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2019년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들 말마따나 인정과 의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에서 그냥 투명인간과도 같은 존재가 된 야쿠자 겐지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신문기자]를 만들었던 감독이 이렇게 평범한 한국 조폭 영화에서도 봤을 법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네?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게 2019년으로 넘어서와는 완전히 다른 온도로 다가옵니다. 후지이 미치히로 감독은 일본의 또 다른 현실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일본은 야쿠자에 대한 법규를 발표하면서 야쿠자의 씨를 말렸습니다. 야쿠자 전력이 있는 사람이면 야쿠자를 그만두고서 5년 동안 휴대폰 개통도, 계좌 발급도, 취업도 안되고, 그들의 가족 역시 사회에서 배척 당하죠. 야쿠자 출신이라면 결국 사회에 편입되는 것 자체가 목적인 비참한 삶을 삽니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권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테고요.
감옥에 간 사이 이렇게 변한 것을 모르는 겐지는 이런 사회에서 자신이 지켜줄 가족도, 자신을 지켜줄 가족도 없는 현실에서 방황을 합니다. 그에게 잠깐의 희망을 주기는 하지만, 사회에서는 그를 알았던 사람들에게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가족의 일원이죠.
정의 구현을 위해서 싸우는 [신문기자]의 주인공과는 달리, 그 반대의 입장에 있던 사람을 주인공을 내세운 [야쿠자와 가족]. 결과적으로는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슬픈 이야기기도 하고요. 그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만든 것은 주연 배우였던 아야노 고의 역할이 단연 컸습니다. 20년의 세월을 오가는 시간 동안 가족을 이루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아야노 고의 눈빛 때문이라도 볼만한 작품이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 올 상반기에 관심을 두었던 작품이 일본 영화 두 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가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편 모두 아야노 고가 주연을 맡았네요. 한 편은 [호문쿨루스]였고, 다른 한 편이 바로 이 작품 [야쿠자와 가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