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히어로...
넷플릭스의 장점 중 하나가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인데요. 특히 코로나로 인해 집 밖 나가기도 힘든 상황인지라, 이렇게 콘텐츠로라도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해줘서 그런지 넷플릭스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지난 4월 21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소개가 된 [제로]는 투명인간이 된 호년 제로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해서 호기심 때문에 플레이를 눌렀습니다. 일단 이 시리즈는 넷플릭스 이탈리아 오리지널 시리즈입니다. 여전히 [시네마천국]과 [인생은 아름다워]가 남아 있고, [수부라] 시리즈로 최근 이탈리아 콘텐츠를 만난 적은 있지만 [제로]는 좀 더 젊고, 조금은 익숙한 할리우드 느낌이 꽤 묻어나서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흐르고, 낯선 배우들이 출연함에도 장벽이 느껴지지는 않았던 시리즈입니다.
[제로]을 이끌어가는 주요 캐릭터는 이탈리아의 이민자 2세대들입니다. 다양한 인종들이 전면에 등장하고(주로 아프리카 이민자), 주인공은 세네갈 이민자 2세대인 오마르입니다. 실제로도 흑인 청소년의 삶을 중심으로 제작한 이탈리아의 첫 번째 드라마라고 하는데 흔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게다가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드는 쇼도 거의 없다고 하니, 이탈리아에서는 꽤 신선한 작품이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총 8부작으로 이뤄진 [제로]의 주인공 오마르는 밀라도 외곽에 있는 바리오라는 도시에 살고, 세네갈 이민자 2세대지만, 일본 만화 스타일로 만화를 그리는 10대입니다. 물론 연관성은 전혀 없습니다. 극중에서도 오마르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죠. 어쟀든 꿈을 꾸지만, 그 꿈을 혼자 속으로만 갖고 있는 소심한 친구기도 하죠. 피자집 배달하면서 벌어놓은 돈으로 언젠가 벨기에로 건너가 만화가로 대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던 오마르는 우연치 않게 피자 배달을 시킨 건축가 안나와 이야기를 하게 되고 자신의 꿈에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안나를 마음에 품기도 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오마르는 사소한 오해로 인해 동네 건달 샤리프에게 쫓기게 되고, 위기의 순간 오마르는 사라집니다. 샤리프는 오마르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게 되고, 오마르를 설득합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 바리오를 지키자고 말이죠. 본인도 몰랐던 능력을 갖게 된 오마르와 예상치 못하게 은근 정의로운 샤리프와 친구들이 자신들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주요 내용입니다.
이탈리아의 젊은 크리에이터 안토니오 디켈레 디 스테파노의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이 작품은 안토니오가 직접 각본 작업까지 참여한 작품입니다. 이탈리아의 만화가기도 한 메노티 작가 역시 제작자로 참여했고, 그래서 그런 것인지 시리즈 자체가 통통 튀고 에너지가 넘칩니다. 안토니오 디켈레 디 스테파노 작가도 앙골라 출신의 2세데 이민자기도 해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작품이기도 한데, 어쩌면 한없이 전형적으로 진지할 수 있는 이민자의 갈등, 빈부 격차 등의 소재를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의 오락 드라마로 풀어냈다고나 할까요.
이 시리즈의 원작자기도 한 안토니오 디의 인터뷰를 살펴보니 “[제로]가 오늘날 이탈리아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는 시작이자 작은 창이라고 생각합니다. 2021 년 이탈리아 미디어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탈리아를 25 년 전의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죠. [제로]는 2021 년의 이탈리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어쩌면 넷플릭스 시리즈였기데 가능한 작품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익숙하지 않은 얼굴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음에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익숙한 설정과 전개 덕분일 것입니다. 아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든다고 했을 때, 전 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생각했을 터이고, 꼭 우리것이 세게적인 것이라는 걸 담지 않아도 됐을테니까요. 조금만 살짝 변주를 해도 흥미로운 히어로물이 되기도 하니까요. 투명인간이라는 설정이 별다른 능력은 아닌데 사랑을 얻고, 동네를 살리는 주인공 제로와 친구들의 활약이 꽤 즐겁습니다. 이 시리즈의 메인 카피는 '보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힘이다' 인데 이 시리즈와 잘 어울리고, 잘 표현하는 말인 것 같네요. 원작자의 인터뷰에 비춰보면 이탈리아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요.
시즌 1은 8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졌고, 솔직히 주인공 오마르의 투명 인간 능력이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빌런도 강하지 않고요. 우선은 시즌 1은 [제로]가 어디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시즌 1을 다 본다면, 프롤로그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오마르의 능력과 관계된 것들, 오마르 동생 아와의 흑화 그리고 사라졌던 엄마들의 떡밥을 던지면서 끝나다보니 본격적인 전개는 시즌 2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ZERO / 제로
총괄 프로듀서: 스테파노 볼타조
연출: 파올라 란디, 이반 실베스트리니, 마르게리타 페리, 모하메드 호사멜딘
각본: 안토니오 디켈레 디 스테파노 외
원작: 안토니오 디켈레 디 스테파노 (소설 Non ho mai avuto la mia età)
출연: 주세페 데이브 세케(제로), 하룬 폴, 베아트리체 그란노, 리처드 딜런 마곤, 다니엘라 스카톨린, 마디오르 폴, 비르지니아 디오프, 알렉스 반담, 프랑크 크루델레, 조르다노 데 플라노, 아샤이 롬바르도 아로프, 로베르타 마테이, 미겔 고보 디아스, 리비오 코네
제작자: 마시모 바바소리, 카롤리나 카발리, 리산드로 모나코, 메노티, 스테파노 볼타조
제작: Fabula Pictures, Red Joint
배급: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공개: 2021년 4월 21일 (전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