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에 대한 할 말이 가득한
전설로 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설로 일컫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이라면서 그게 사실이든 아니는 환상을 품기 마련이죠. 그 환상이 깨진다면 더 이상 전설은 아닌 것이고, 깨지지 않는다면 진짜 전설이고. 자연스레 그 시대 그 상황 그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고요.
지난 2021년 3월 1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비기: 할 말이 있어 Biggie: I Got A Story To Tell]은 아직은 탄탄한 그래서 환상이 깨재지 않은 전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힙합의 전설로 남아있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1972-1997)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죠.
불의의 총격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훌쩍 넘어간 상황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그의 온전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의 음악 활동을 살펴봐도 단 두 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했을 뿐이고, 그게 끝이었으니까요.
비기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도 있지만 무엇보다 죽음이 앞에 나옵니다. 동부를 대표하는 비기와 서부를 대표하는 투팍의 죽음이 매우 깊게 연관되어 있었고, 이런 것이 힙합의 이미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것을 기대했던 팬들이라면 아쉽겠지만, 다큐멘터리 [비기: 할 말이 있어]는 그의 죽음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의 죽음을은 충분히 소재로 사용될만한 이야기기는 하지만, 정말이지 이 다큐멘터리는 비기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으며, 음악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미래를 꿈꿨고, 어떻게 살아가려고 했는지를 그와 죽을 때까지 함께 했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인터뷰와 영상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투팍과 비기의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지만 그게 중심에 있지는 않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비기의 일생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그가 어떻게 영향력있는 래퍼가 되었는지 그에게 딸의 탄생, 절친의 죽음, 그리고 투팍의 죽음까지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말이죠.
힙합에 대해서 잘 몰랐고, 특히 90년대에는 힙합을 듣지 않았던지라 비기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기에 이 다큐멘터리는 꽤 흥미로웠고 친절합니다. 힙합 입문 가이드로서 훌륭하고, 비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콘텐츠입니다. 저만 하더라도 이걸 보면서 비기라는 뮤지션이 갖고 있는 재능과 음악적 다양서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랩보다는 스타일리스틱스 노래를 흥얼거렸고, 옆집 사는 재즈 뮤지션 아저씨로부터 다양한 재즈 음악을 듣고 배우고, 자메이카에 사는 뮤지션 삼촌을 통해서도 그의 음악적 자양분을 쌓았다는 점은 그의 음악이. 그가 만든 힙합이 달랐다는 것을 끄덕이게 하더군요.
이렇듯 자기가 살아온 환경과 쌓아온 음악적 경험들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비트를 만들고, 음반 제작에는 확실한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안타깝게도 1997년 3월 9일 오전 1시 45분 세상을 떠났고, 그의 나이 24세였다는 것은 그가 펼쳐 낼 음악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도 아쉬움이 생깁니다. 그때가 본격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고, 그의 영향력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겠다 싶다고 결정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지금 보면 24년이라는 삶이 짧기는 하지만, 그가 살아온 삶은 그의 배에 해당하는 삶이 압축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네요.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겠죠.
"항상 말하지 내가 세상의 눈이라고
별 짓을 다하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사람은 실수로부터 배워야 해.
이제 내 이야기를 들려줄 때야.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
대신 이 말을 해주고 싶어.
인생은 이렇더라(This is how it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