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그녀의 발렌타인 데이
모든 것이 빠른 여자와 모든 것이 느린 남자의 이야기 [마이 미씽 발렌타인]은 ?로 시작해 !에서 .로 끝나는 기분 좋은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첫사랑 시차로맨스'라는 광고 문구로 인해 이뤄질 수 없는 성향의 두 사람이 펼치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를 기대했었지만, 일단 그런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여느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두 사람의 케미에 기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 영화의 확실한 장점이자 차별점입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극적으로 끌어올라가는 것은 여주인공 샤오치가 발렌타인데이를 잃어버린 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려주는 후반부 남자 주인공 타이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영화 전반부는 남들보다 모든 것이 조금씩 빠른 샤오치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그리면서 웃음과 발랄함으로 한껏 분위기를 올려놓고, 영화 후반부는 전반부에 미스터리하게 등장했던 타이의 대활약이 펼쳐지면서 눈물과 감동으로 마무리 짓죠.
아, 이 영화 좋습니다. 대만산 로맨스 영화는 역시 믿고 봐도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세상을 떠난 남편의 연인이었던 한 남자와 남은 아내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나의 EX]도 그렇고, 2020년 대만 박스오피스를 씹어먹었던 고등학교 남학생 두 명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도 그렇고, 대만이 만드는 로맨스 영화들은 사랑의 범위가 넓고 이 또한 저마다의 색깔로 펼쳐내니 보는 느낌이 완전하게 다르거든요. 대만 영화 특유의 느낌이 있다랄까요. 익숙하지만 뻔하지는 않는 점도 그렇고요.
[마이 미씽 발렌타인]도 그렇습니다. 결국은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고,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고, 나를 사랑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흔히들 다루는 소재죠. 다만 이 소재를 어떤 리듬으로 어떤 소재로,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특별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남는 것인데, 이걸 아주, 잘 했습니다.
이패유 배우가 맡은 샤오치는 모든 것이 빠른 캐릭터로 말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웃을 때도 모든 것이 조금씩 앞서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영화 속에서 세심하게 표현이 되죠.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진을 찍을 때 절대로 눈을 뜨고 찍지 못하는 것인데, 사라진 하루 그것도 발렌타인 데이의 비밀을 파헤치게끔 하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합니다. 유관정 배우가 맡은 타이는 모든 것이 느린 캐릭터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 전반부는 샤오치 중심으로 들어가다 보니 남자 주인공은 언제 나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여성 캐릭터의 성장영화인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지만 샤오치의 사라진 발렌타인 데이의 키를 쥐고 있는 타이의 스토리가 펼쳐지는 후반부는 타이의 원맨쇼로 이뤄집니다. 그리고 전반부에서 자세히 보면 반응이 조금씩 느린 타이의 행동들이 웃음포인트기도 하고요.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은 여주인공이 전반부, 남주인공이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시차가 다른 캐릭터들을 내세우기도 했고, 실제 영화내에서도 두 배우과 활약하는 시간대가 다릅니다. 그냥 시차가 다른 영화죠. 그러다보니 영화 말미에 가서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장면에서 마음이 울컥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웠던 것이기도 하겠죠. 엔딩 크레딧에 올라오는 Bee Gees의 'I Started a Joke'까지 들으면 그 감정선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어 들리는 이패유 배우가 직접 부른 주제곡까지 들으면 더욱 좋구요.
*이 작품은 대만 금마장영화제에서 최다 부문인 11개 후보에 올랐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시각 효과상, 편집상 등 5개 부문을 받았습니다. 받을만합니다.
**그래서 샤오치의 발렌타인데이가 왜 사라졌는가?는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 판타지 로맨스입니다. 리얼리즘 기반 로맨스 영화는 아니에요.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정말 매력적입니다. 특히 샤오치 역에 이패유 배우!!!
****샤오치의 예쁜 동료로 나오는 배우는 헤이자자(黑嘉嘉)라는 배우로, 실제로는 프로 7단의 바둑 선수이며, 이 작품이 첫 영화출연작입니다.